Black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는 '궁정론'에서 '검정은 의복에 어느 색보다 더 잘 어울린다'고 썼고, 서양은 이에 동의했다. 검정색이 가장 패션에 잘 어울리는 색으로 떠오른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실용적인 이유다. 1360년경에 지저분한 회갈색이 아닌, 진짜 검정색을 날염하는 법이 발견되었다. 두 번째는 흑사병으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이었다. 유럽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니 궁핍함과 더불어 집단적인 참회 및 애도를 위해 검정색을 입었다. 네덜란드 부르고뉴의 공작이었던 선공 필립은 1419년에 암살당한 아버지 장 1세를 기리기 위해 검정색 외의 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세 번째 이유는 사회 계층에 의복을 반영해 법을 성문화하려는 시도였다. 부유한 상인은 스칼렛처럼 부자들의 색을 입을 수 없는 반면 검정색은 입을 수 있었다. 이런 강박은 181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각 가문의 재고 목록에 의하면 1700년경에는 귀족 의복의 33퍼센트, 관료 의복의 44퍼센트가 검정색이었다. 평민에게도 인기가 많아 의복의 29퍼센트가 검정색이었다. 

흔했지만 검정색은 생생하고도 도전적인 현대성을 지켜왔다. 인류 최초의 순수 추상화라 여겨지는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정 사각형'을 살펴보자. 이해하긴 어렵지만 말레비치에게 '검정 사각형'은 어떤 의도의 선언이었다. 그는 '예술을 현실세계의 하중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정사각형이라는 안식처를 제공'하기를 절실하게 원했다. 이는 혁명적인 발상의 표현을 위해서는 혁명적인 색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바로 검정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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