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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서양의 직선적인(linear)관점과 동양의 순환적인(circular) 관점은 장시간에 걸쳐 발생하는 변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토머스 모어는 자신의 논문에서 완벽한 정부를 논하면서 '유토피아'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이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이라는 의미와 함께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서양의 지성사에서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공화국, 청교도주의, 셰이커 공동체, 모르몬주의,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에덴동산과 새로운 예루살렘의 약속과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위에 나열된 서양의 유토피아 개념에는 유교 사상이나 고대 중국의 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유토피아를 향한 직선적 진보가 가정되어 있다.
일단 도달하면 그 상태는 영원히 지속된다.
운명이나 초인간적인 개입이 아닌 인간의 노력으로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극단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은 동양인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는 여러면에서 반대된다. 동양인들은 진보보다는 '회귀'를 추구하고, 극닥적인 것들 사이의 '중용'을 추구한다. 그리고 동양의 유토피아는 '과거'에 존재하며, 인간의 소망은 '현재 상태에서 과거의 완전한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대 유대인들의 문화는 그리스보다는 중국의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대인의 에덴동산도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 역시 과거로의 회복을 추구했다. 

세상을 지각하는 서로 다른 눈

우리가 수행한 거의 모든 연구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 방식의 차이를 보였고 그 정도 또한 매우 큰 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질적으로 아주 다른 방식의 행동 양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배경 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발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양인들은 배경 속의 사물에서 일어난 변화를 잘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제자인 일본인 대학원생 다카 마스다가 미시간대학에 유학하면서 처음으로 미식축구 게임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게임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보았으나, 주변 관중들의 행동에 질려버렸다(He was in fact thrilled by the game, but he was appalled by the behavior of his fellow students). 그들은 계속해서 일어선 상태로 게임을 보았고, 때문에 뒤에 있던 그의 시야를 계속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They kept standing up and blocking his view). 항상 ‘뒤를 잘 살펴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그였기 때문에 그는 관중석에서 잠시 일어서더라도 뒷사람을 생각해서 곧바로 다시 앉곤 했다(In Japan, he told me, everyone learns from an early age to “watch your back.” Nothing to do with paranoia–on the contrary, the point is to make sure that what you do doesn’t impinge on the pleasure or convenience of others). 그런 그에게 뒷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국 관중들의 행동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The American students’ indifference to the people behind him seemed unfathomably rude to him). 

마스다는 이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서양인들은 ‘tunnel vision’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동양인들은 더 넓은 각도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즉, 뒤도 신경 쓰는 것처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장면과 장면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기자들이 서 있는 방향이나 거리도 이전 장면과 다르고, 담배가 타들어간 정도조차 달라지기도 한다. 영화를 찍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보통 일반 관객들은 잘 모르고 넘어간다. 그런데 만일 동양인들이 서양인들보다 전체 맥락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영화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를 더 민감하게 알아내지 않을까? 마스다와 나는 이를 실험을 통하여 검증해보기로 했다. 일본과 미국의 학생들에게 컴퓨터로 제작한 비디오 장면들을 보여주고 난 뒤 두 장면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보고하도록 했다. 


두 장면은 비슷해 보이지만 100%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륙하고 있는 비행기의 경우 한 장면에서는 바퀴가 내려와 있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내려와 있지 않다. 사물들 사이의 관계도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헬리콥터와 바로 앞의 비행기 사이의 거리가 두 그림에서 서로 다르다. 이 과제에서도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배경에서의 차이’와 ‘관계들에서의 차이’를 훨씬 많이 찾아냈다. 

동양인들이 전체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은 앞에서 소개한 연구에 의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반대로, ‘전체 맥락에서 부분을 분리해내는 과제’에서는 미국인들이 동양인들보다 더 뛰어날까? 서양인들이 분석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지각한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소위 ‘막대기-틀(rod-frame)’ 검사를 실시했다. 

이 검사에는 특별한 구조를 가진 장치가 사용된다. 기다란 상자의 끝에 막대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막대기는 상자와 따로 움직일 수 있다. 또한 상자도 따로 움직일 수 있는데, 사람이 상자에 얼굴을 집어넣고 보면 상자는 ‘틀’로서 작용하고 그 전면에서 막대기를 볼 수 있다. 실험 참가자의 과제는 막대기가 지면과 수직을 이루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막대기도 움직이지만 그 상자 또한 움직이기 때문에 설사 막대기가 지면과 수직이더라도 상자와는 수직이 아닐 수 있고, 또 상자와는 수직이나 지면과는 수직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참가자는 상자(틀)의 위치를 무시한 채 막대기의 수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소위 ‘장-독립적(field-independent)’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지만 상자의 위치에 의해 판단이 좌우되는 ‘장-의존적(field-dependent)’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 과제를 잘 하지 못한다. 실험 결과, 동양인들(주로 중국인과 한국인)이 미국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실수를 더 많이 범했다. 즉, 전체 환경(상자의 위치)에서 부분(막대기 위치)를 독립적으로 떼어내어 보는 것이 미국인들에 비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My Neighbor Totoro


"So how do you like the new place, dad?"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자기 개념은 그들의 언어에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일본어에서는 일인칭 주어가 대화 중에 자주 생략되며, '나'에 해당하는 말이 맥락에 따라서, 대화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서 각각 다른 용어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여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설을 할 때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わたし(와타시)란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남자가 대학 동기들과 관련하여 자기를 표현할 때에는 ぼく(보쿠)나 おれ(오레)를 사용하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이야기할 때는 おとうさん(오토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본인들이 흔히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じぶん(自分)이라는 말도 그 어원은 "집단에서의 내 부분"을 의미한다. 

시리얼 고르기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Woolworths의 시리얼 코너의 일부이다. 
여기서 질문. "What will you have?"
?

"Tell me about yourself"라는 요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기 개념(self-concept)을 묻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미국과 캐나다인들은 주로 성격 형용사(friendly, hard-working)를 사용하거나, 자신의 행동(I go camping a lot)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적 맥락을 동원하여 대답하고, 또한 자신의 사회적 역할(I work for a company that makes smartphones)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맥락을 제시해주지 않은 채로 자신을 기술하게 하면 어려워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나 직장에서와 같은 특정한 맥락을 제시해주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기술하게 하면 아주 능숙하게 해낸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경우 이와 정반대의 패턴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자신을 기술할 때 '다른 사람'을 언급하는 정도가, 일본인이 미국인보다 2배나 높았다고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동양의 격언은, 동양 문화에서 개인의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기보다는 억압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개인의 성공을 덜 중시하며, 그보다는 집단 전체의 목표 달성이나 화목한 인간 관계를 더 중시한다. 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무조건적으로 환영하지도 않는다. 동양인들에게 있어 개인의 만족감은 자신이 집단 성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들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동양적 사고에서 바라본 개인은, 항상 어떤 구체적인 맥락 속에 있는 존재이다. 구체적인 어떤 사람과 구체적인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을 분리시켜 그의 행위나 속성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동양의 사고 방식에서는 매우 낯선 일일 수밖에 없다. 

동양과 서양의 자기 개념(self-concept)의 차이는 자신을 얼마나 독특한 존재로 보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자신의 독특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인들은 그러한 착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인 김희정과 헤이즐 마커스는 사람들에게 여러 대상의 그림을 보여주고 그중 한 사물을 선택하게 하는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가장 희귀한 것을 고르고 한국인들은 가장 보편적인 것을 골랐다고 한다. 같은 연구에서 볼펜들을 선물로 주면서 고르게 했더니 미국인들은 가장 희귀한 색의 볼펜을 고르고 한국인들은 가장 흔한 색의 볼펜을 골랐다. 미국인들은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나 한국인들은 늘 남들 정도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질문. "What will you have?"

생각의 지도: 여럿이 있으면 안전하다(There's safety in numbers)

이 격언은 원래 서양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서양 사람보다는 동양 사람들의 심리를 더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사회심리학자인 스스무 야마구치와 그 동료들은 그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쓴 음료를 마시는 것과 같은 불쾌한 경험이 과제 수행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 연구에는 불쾌한 경험을 하는 조건과 그렇지 않은 통제 조건이 있으며 각 참가자가 어느 조건에 배정될지는 제비뽑기로 결정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 제비뽑기는 '단독' 조건과 '집단' 조건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단독' 조건의 참가자들은 각 사람이 총 4개의 제비를 뽑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집단' 조건의 참가자들은 4명이 집단을 이루어서 각 사람이 한 번씩 제비를 뽑게 된다고 믿었다. 연구자들은 두 조건 모두 4장의 제비에 적힌 숫자를 합하여 누가 혹은 어떤 집단이 쓴 음료를 마시게 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쓴 음료를 마시게 될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일본인 참가자들은 '집단' 조건에서 자신의 불운의 가능성을 더 낮게 판단했으나, 미국인 참가자들은 정반대의 패턴을 보였다. 즉, '단독'으로 제비를 뽑을 때 쓴 음료를 마실 가능성이 더 낮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분명 동양인들은 여럿이 있을 때 편안해 하는 듯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미국 작가의 일침

'생각의 지도':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철학

고대 그리스의 체계에서는 모든 형용사 뒤에 영어의 'ness'에 해당하는 접미어를 붙여 명사화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white'는 'whiteness'로, 'kind'는 'kindness'로 명사화되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습관적으로 행한 작업 중 하나는 사물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 추상화된 속성에 의거하여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각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들에 근거하여 그 범주에 속하는 사물들의 특징과, 그 사물들의 행위와 원인을 설명하고자 했다. 혜성을 예로 들어보자. 그리스인들은 혜성의 다양한 속성들을 파악하고 그 속성에 따라 혜성을 다양한 추상성의 수준에서 범주화했다. 즉, 특정한 '이 혜성(this comet)', '혜성의 일종(a comet)', 혹은 '천체(a heavenly body)', '움직이는 사물(a moving object)' 등과 같이 추상성의 정도가 다른 여러 수준에서 범주화하였다. 그리하여 각기 다른 수준의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에 근거하여 혜성의 운동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사물 자체'를 분석의 주의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의 철학 정신에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물질 역시 서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실체로 간주했다. 그들은 사물 자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경향을 갖게 되었다. 1) 사물의 속성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2) 그 속성에 근거하여 범주화하고, 3) 그 범주들을 사용하여 어떤 규칙을 만들어, 4) 사물들의 움직임을 그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생각의 지도':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

The Greek sense of agency fueled a tradition of debate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였던 고대 그리스 문화는 자연스레 논쟁의 문화를 꽃피웠다). Homer makes it clear that a man is defined almost as much by his ability to debate as by his prowess as a warrior. A commoner could challenge even a king and not only live to tell the tale, but occasionally away an audience to his side. Debates occurred in the marketplace, the political assembly, and even in military settings. Uniquely among ancient civilizations, great matters of state, as well as the most ordinary questions, were often decided by public, rhtorical combat rather than by authoritarian fiat. Tyrannies were not common in Greece and, when they arose, were frequently replaced by oligarchies or, beginning in the fifth century B.C., by democracies. The constitutions of some cities had mechanisms to prevent officials from becoming tyrants. For example, the city of Drerus on Crete prohibited a man from holding the office of kosmos (magistrate) until ten years had gone by since the last time he held the office. ......

a tradition of debate(논쟁의 문화)에서 탄생한 표현 중에 하나인 hear, hear(옳소! 옳소!). 이 말의 어원은 17세기 영국 의회에 있다. 하원과 상원 두 곳에서 누구든 연설하는 의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남들이 연설자의 말을 못 듣게 하려고 큰 소리로 콧노래를 불렀다. 반대로, 연설하는 의원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다들 hear him, hear him이라고 소리쳤다. 콧노래 부르지 말고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뜻. 훗날 이 말이 줄어들어 hear, hear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연설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옳소!'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의회에서는 대체로 박수가 금지되어 있어서 박수 대신 이 말을 한다고도 한다. 

After a rousing speech in the British parliament, the members loudly shouted "hear, hear."
영국 의회의 격정적인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은 "옳소, 옳소!"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