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p


crap이란 말이 수세식 변기를 발명한 Thomas Crapp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다. 맞는 말일까? 영국이냐 미국이냐에 따라 다르다. 

일단 Thomas Crapper(1836~1910)는 수세식 변기를 발명한 사람은 아니다. 수세식 변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 존 해링턴 경이었다. 해링턴 경은 직접 발명한 수세식 변기를 자신의 저택에 설치해 놓았는데,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와서 친히 사용했다고 한다. 해링턴 경은 어찌나 뿌듯했던지 그것에 관한 책까지 써냈는데, 제목이 '구린 주제에 관한 새로운 담론: 변소의 변신 A New Discourse Upon a Stale Subject: The Metamorphosis of Ajax'이었다. Ajax('에이잭스')란 당시 'a jakes'를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이었다. jakes는 '변소, 변기'를 뜻하는 속어였다. 그 시절 영국 사람들의 배변 문화를 음미해볼 수 있는 책이다.

미국에서는 '화장실에 간다'고 할 때 go to the john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 이 말이 바로 존 해링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john을 화장실의 의미로 쓴 기록은 해링턴 사후 100년도 더 되어서야 처음 등장한다. 그렇지만 앞에 말한 jakes가 변형되어 john이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것도 아니면, 영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냄새가 고약한 곳에는 남자아이 이름을 붙이는 게 제격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해링턴의 발명품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상수도와 하수도가 없던 시절에 수세식 변기란 대중에 보급될 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전기가 안 들어오면 전등이 무슨 소용이고, 하얀 눈이 없으면 스키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수도와 하수도는 19세기 중엽에야 영국에 도입되었고, 1852년 에드워드 제닝스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세식 변기 비슷한 장치에 대한 특허를 얻었다.

그럼 Thomas Crapper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는 1836년 요크셔에서 태어났다. 제닝스가 특허를 획득한 이듬해인 1853년, Crapper는 런던에 상경해 배관공이 되려고 도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850년대 하수도 설비가 보급되면서 누구나 부끄럽고 구린 배출물을 물로 씻어내릴 수 있게 되었고, 변기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Crapper는 Thomas Crapper&Co.라는 회사를 차리고 자체 제품을 개발했다. 부자(뜨개) 장치를 발명해 물이 자동으로 알맞게 채워지게 했고, 물을 내린 후 오수가 역류하지 않게 막아주는 장치를 추가로 달았다. 그야말로 배관 기술의 정점이라 할 만한 탁월한 변기였다. Crapper의 수세식 변기는 왕세자인 웨일스 공의 저택에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도 채택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보면 지금도 맨홀 뚜껑에 Crapper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crap이란 단어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길다. 1801년 J. 처칠이라는 사람이 쓴 시에 처음 등장한다. 시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생리현상이 급했던 한 육군 중위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리나케 옥외 변소로 달려갔지만 이미 소령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중위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인데 그때 대위가 나타나서 새치기하려 했다. 중위의 고통은 절정에 달했다. 그 대목에서 crap이란 단어가 나온다 (소변'을 뜻하는 number one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최초로 등장한다). 이 아름다운 시는 Thomas Crapper가 태어나기 35년 전에 쓰였다. 그러니 crap이 Crapper의 이름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된 걸까? 직업이 이름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Crapp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는데 그럼 어쩌겠는가. 그쪽 일을 하라는 운명인가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Crapper라는 사람도, crap이란 단어도 그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세기 내내 미국 문헌에선 crap이란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280만 병력을 유럽에 파병했을때, 거기서 미군들이 화장실 변기마다 쓰여 있는 Thomas Crapper&Co.를 못 보고지나쳤을 리가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crap, crapper(변기), crap around(허튼짓하다), crap about(헛소리하다) 같은 말들이 미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영국 영어에서는 crap이 Crapper에서 유래하지 않았지만, 미국 영어에서는 그렇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Crapper는 crap이란 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널리 퍼뜨리는 데 공을 세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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